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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요와 감사의 계절』 추석(秋夕)의 유래와 그 신성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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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2026-09-30T08:35:00.000Z
- Updated: 2026-10-01T09:33:46.000Z
- Author: 류광식
- Tags: 대기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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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 가슴속 깊이 품어온 이 한 줄의 문장만큼 추석이 지닌 풍요로움과 온정을 명쾌하게 담아낸 말이 또 있을까.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고 산천(山川)이 오색 물결로 물들 때면 우리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秋夕)을 맞이한다. 추석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직역하면 ‘가을의 빛나는 밤’ 또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을 지닌다.  
유난히 크고 밝은 보름달 아래 한 해 동안 땀 흘려 가꾼 곡식과 과일을 거두어들이고, 조상(祖上)과 하늘에 감사의 예를 올리는 한가위는 단순한 휴식이나 명절 그 이상의 철학적·문화적 깊이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이 풍요로운 가을밤을 명절로 삼아 축제(祭典)를 벌여왔을까.​  
추석의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신라(新羅) 시대의 고사(故事)에서 그 명확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시대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편에는 추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가배(嘉排)’에 관한 유명한 기록이 남아 있다.  
신라 제3대 유리왕 9년, 왕은 왕도를 육부(六部)로 나누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 부의 여자들을 둘로 나누어 편을 짜게 하였다. 그리고 7월 16일부터 매일 아침 일찍 뜰에 모여 베를 짜기 시작하여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성과를 겨루게 했다.  
8월 보름날 성적을 심사하여 진편이 이긴편에게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며 즐겁게 놀았는데, 이때 진편의 한 여인이 일어서서 “회소, 회소(會蘇 會蘇)”라며 탄식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 소리가 매우 슬프면서도 아름다워 후대 사람들이 그 음조에 맞추어 노래를 만들었고, 이것이 바로 신라의 유명한 ‘회소가(會蘇歌)’이다. 이 베짜기 내기 행사를 가리켜 ‘가배’라 불렀는데, ‘가배’라는 말은 ‘가운데’를 뜻하는 우리말 ‘갑’에서 유래하여 8월의 한가운데 날을 의미하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한가위’라는 말의 뿌리가 되었다. 이처럼 추석은 고대 사회의 공동체적 협동 노동과 그 노동의 결실을 축하하는 축제적 성격에서 출발했다.  
농경 사회에서 가을은 일 년 가운데 가장 수확물이 풍성한 시기이다. 여름철의 지루한 장마와 폭염을 견뎌내고 햇곡식과 햇과일이 여무는 8월 중순은 배고픔과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 공동체가 다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최적의 시기였다. 신라의 가배 전통은 단순히 여인들의 노동 효율을 올리기 위한 경연을 넘어, 온 부족과 국가가 수확의 기쁨을 공유하고 우애를 다지는 국가적 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추석의 유래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핵심 요소는 바로 농경 의례(農耕儀禮)와 조상에 대한 숭배 의식이다. 우리 선조들에게 추석은 단순한 놀이의 날이 아니라, 신령(神靈)과 사당의 조상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거룩한 날이었다.  
이 날의 대표적인 의식이 바로 차례(茶禮)와 성묘(省墓)이다. 추석 차례는 설날에 올리는 차례와 그 성격이 다르다. 설날 차례가 새해를 맞아 조상께 인사를 드리는 신년 의식이라면, 추석 차례는 한 해 동안 잘 지은 농사 결실을 조상께 바치는 올벼심리(新穀祭)의 성격을 띤다.  
한 해 동안 땀 흘려 거둔 햇곡식과 햇과일로 음식을 만들어 조상에게 먼저 올린 후에야 비로소 자손들이 이를 나누어 먹었다. 이는 내가 누리는 이 풍요가 오롯이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조상의 덕과 하늘의 은혜 덕분이라는 겸손과 감사의 철학이 담겨 있다.  
추석의 대표적인 명절 음식인 송편(松餠) 역시 이러한 농경적 신앙과 유래를 같이한다. 송편은 햇쌀로 가루를 내어 솔잎을 깔고 찌는 떡으로, 그 모양이 반달을 닮아 있다. 왜 만월(滿月)이 아닌 반달 모양으로 떡을 만들었을까에 대해서는 백제 의자왕 때의 설화가 유명하다. 궁궐 땅속에서 나온 거북의 등껍질에 “백제는 만월이요, 신라는 반달이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이를 두고 무속인은 만월은 차서 기울 일만 남았고 반달은 앞으로 점차 차올라 만월이 될 징조라 해석했다.  
신라인들은 차오르는 반달의 기운을 담아 미래의 번영(繁榮)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송편 안에 콩, 깨, 밤 등의 햇곡식을 넣어 빚는 행위는 이듬해의 풍작(豊作)과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례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조상의 묘소를 찾아 풀을 베어 정돈하는 벌초(伐草)와 성묘 역시 가을을 맞아 효(孝)의 도리를 다하는 한국 고유의 숭조(崇祖) 사상이 구현된 아름다운 전통이다.​  
추석은 개인이나 개별 가문의 행사로 그치지 않고 마을 전체가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대규모 민속 축제의 장이었다. 추석 밤하늘을 수놓은 밝은 달빛 아래서 펼쳐졌던 수많은 세시풍속(歲時風俗)은 온 동네 사람들의 유대감을 고취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다.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인 강강술래는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여인들의 집단 요원 놀이로,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려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며 여성들의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화합을 상징했다. 이외에도 남성들이 힘을 겨루는 씨름이나 마을 전체가 편을 나누어 겨루는 줄다리기, 소놀이, 거북놀이 등도 추석의 유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씨름에서 이긴 장사에게는 농사에 가장 중요한 자산인 황소를 상으로 주어 생산성을 독려했고, 소놀이나 거북놀이는 마을의 액운(厄運)을 막고 복을 불러오는 의식으로서의 성격을 지녔다. 이처럼 추석의 유래 속에는 개인주의를 넘어 서로 돕고 나누는 두레와 품앗이의 정신이 녹아 있다. 가난한 이웃에게도 먹거리를 나누어 주고 길 가던 나그네에게도 주안상을 대접하던 한가위의 풍습은 고대 사회부터 이어져 온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공동체 철학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지구 반대편 유대 문명에도 우리의 추석과 놀랍도록 닮아 있는 명절이 존재한다. 바로 구약 성경에 등장하며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이 지키는 초막절(草幕節, 수콧) 혹은 수장절(收藏節)이다. 초막절은 유대력 7월 15일에 시작하는데, 이는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팔월 보름 추석과 계절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완벽하게 궤를 같이한다.  
두 명절은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고 하늘에 바치는 추수 감사(秋收感謝)의 절기라는 점, 과거의 역사와 조상을 기억하는 의례라는 점, 그리고 고아나 과부, 가난한 이웃과 기쁨을 나누는 축제라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한국인이 햇곡식으로 차례를 올리듯 유대인 역시 포도와 올리브, 곡식을 창고에 저장(水藏)한 뒤 풍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올린다. 또한 우리가 성묘와 차례로 조상의 덕을 기리듯 유대인들은 임시 초막에 거주하며 광야를 지나온 조상들의 역사를 되새긴다.  
이처럼 동양의 한반도와 중동의 이스라엘이라는 전혀 다른 공간과 역사를 지닌 두 민족이, 가을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동일하게 하늘과 조상에 감사하고 나눔을 실천해 왔다는 사실은 매우 깊은 울림을 준다.​풍성했던 추석 명절이 지나가고 깊어가는 10월, 산과 들은 더욱 짙은 단풍으로 물들고 청명한 가을 하늘은 한층 높아졌다. 친지들과 나누었던 정겨운 덕담과 둥근 보름달에 빌었던 염원들은 이제 우리 일상 속으로 조용히 녹아들었다. 추석이라는 명절의 절기는 지나갔지만 그 유래가 전해주는 본질적인 정신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신라의 가배에서 시작된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 한 해의 결실을 나눈 추석과 이스라엘 초막절의 겸손한 감사 정신은 명절 하루에만 갇혀 있을 수 없는 삶의 귀한 유산(遺産)이다. 내가 누리는 오늘의 삶은 자연과 조상, 그리고 수많은 이웃의 노고가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깨달음이야말로 추석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휘영청 밝혔던 한가위 보름달의 온기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는 이 10월, 지나온 수확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곁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추석의 정신이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질 때 우리의 매일은 비로소 보름달처럼 풍요롭고 환하게 빛날 것이다.